며칠 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항우울제를 다시 복용해 볼까, 생각한다
아직 적잖게 남아 있고
많이 힘들면 더 먹으라고 준 자나팜 0.25밀리그램은
작은 약통 안에 거의 그대로 있다
...
높은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자살에는 전조가 있고
주변에 보내는 신호가 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가슴 한편에 아프게 남아 있는 후배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결행의 순간은
서서히 소진된 인간의 최후의 임계점은
이전의 순간과 연속적이지 않고
이전의 인과로 환원되지 않는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건 아닐까
...
(어쩌면 몽상인지도 모를) 꿈을 꾸었다
저편에서 한 사내가 걸어와 손을 내민다
잡고 보니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에서 온 나인 것 같다
나는 내가 낯설었는데
지나온 시간에 대한 어떤 슬픔도 회한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됐다며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서럽고 슬퍼 눈물이 났다
울고나니 한결 후련해진 마음으로
나는 상황을 수긍하는 듯 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보면 무엇이 보일까
그것이 나를 가지 못하게 붙잡을 것만 같았다
문득 발이 시렸다
내려다보니 맨발이다
...
우울하다
그러나 세로토닌만 충분하다면
이 느낌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배가 고파 짜증이 날 때
밥을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약을 삼킨다
푸록틴캅셀 10밀리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우울할 땐 세로토닌
...
근래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까지
예고도 없이 면회를 왔던 친구들이 자꾸 생각난다
친구들은 어디선가 빌려온 차 앞으로 나를 이끌었고
친구 중 하나가 문을 열자
여자 친구가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여자 친구도 여자 친구를 데려온 친구들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어디에들 살고 있을까
살아들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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