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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냥 쓰기로 한다

나의 글쓰기가 늘 좌절되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도 자유롭게 글을 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면 언제나 형식적인 부분과 내용적인 부분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맞춤법, 단어 선택, 문장 구조, 출처 확인, 논리, 구성, 체계 등 많은 사항들을 체크하고 또 체크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한 문장 한 문장 이어나간다. 당연히 시간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 못한 채 마무리되곤 했다. 글을 다 쓴 후에도 자신의 글을 200번이나 첨삭했다는 헤밍웨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강박적으로 글 주변을 바장인다. 평균 20번 이상은 글을 다듬어야 맘이 놓이곤 했고, 이젠 됐다 싶을 정도로 쓰고 나서도 글을 보면 보이는 표현이나 문장 문제를 슬쩍 고치곤 한다. 

 

단순히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편하게 풀어내도 괜찮을 만한 이야기이자 이 블로그 같은 지면에서도 나는 생각을 글로 형상화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더 신경 쓴다. 글로써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내 본 적이 없다. 늘 마땅히 철자, 문법, 구성, 흥미롭고 매력적인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글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이 그래야 한다는 것은 누구의 명령인가? 왜 그렇게 글을 써야 하는가? 글쓰기에서 작동하는 이 내적 강제는 사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요구 아닌가? 그러한 강제 속에서 글쓰기는 늘 좌절되었고, 결국 체계 외부를 사고하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던 것 아닐까? 글을 쓰면서 실수, 오류, 천박함, 무의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그것을 마땅한 요구라고 생각하고 잘 쓰고자 노력하게 만드는 지배적 권력 밖에서 사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그랬기 때문에 글쓰기 자체는 늘 어려웠고 번번이 좌절하면서, 결국 타자의 권력 속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갔던 것 아닐까?

 

글쓰기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을 응시하고, 쓰인 문법 밖에서 쓰여야 할 문법과 의미,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글쓰기를 반복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좋은 글의 조건과 요구를 무시하고 용기 있게 기존 권력에 저항하며 글쓰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모국어와 달리 외국어가 불편한 것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써야 하는지 올바른 문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단어와 표현을 쓸 것인지 ‘의식’하고 문법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를 발화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더 많이 발화할 수 없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낯설고 어렵게 되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런 것 아닐까.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이 발화할 때 외국어가 더 좋아지는 것처럼, 글쓰기도 글씨기에 요구되는 규범들을 내려놓고 쓰기를 반복할 때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단어 선택이 적절한가, 주술 구조가 맞는가, 문장 호응이 맞는가, 서사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 신경 쓸 때 나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지점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결국 글을 통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차단되고 결과적으로 기존 권력이 작동하는 세계 속에 안착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글쓰기는 늘 실패했던 것 아닌가? 놓아보기로 한다. 좋은 글이라고 평가되는 조건들을 무시해 보기로 한다. 쓸데 없고 무의미하고 실수 투성인 글을 마구 써보려고 한다. 쓰기에 작동하던 권력에서 벗어나 쓰기 자체의 목적에 충실해 보고자 한다. 후에 읽어보면 쪽팔릴지 몰라도 더 이상 멋진 문장과 드라마틱한 구성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글쓰기 자체에 충실해 보고자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다른 길로 가야 할 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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