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기억. 천방지축으로 놀러 다녔다. 불주사와 이를 빼는 것 말고는 무서운 게 별로 없었다. 옥상에서 쇠창살이 꽂혀 있던 담벼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내려온 후 골목으로 뛰어내리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바위산을 기어올랐고 교회의 높은 첨탑에 올라가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강아지와 자전거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던 개울가에서 개구리나 올챙이를 잡고 신나게 놀곤 했다. 부모님이 공부로 스트레스를 준 기억은 없었다. 저학년 때는 공부를 잘해 몇 번 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숙제했냐고 하시길래 내일 시험이라 숙제 없다고 하니 황당해하시던 기억이 난다. 함께 나머지 공부를 하던 친구들과 텅 빈 운동장을 걸어 나오면서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마냥 노는 게 좋은 시절이었다.
아버지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겨울 방학 때부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 전교 1등을 할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 근거 없는 기대였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걸까. 그 막연한 기대 속에서 나도 저절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처럼 그냥 놀았다. 중학교 첫 시험 성적표, 70명 중 47등이란 등수가 찍혔다. 성적표에 어떻게 도장을 받아 가야 할지 두려웠다. 아버지가 외출 준비를 하실 때를 노렸다. 아버진 일그러진 표정으로 꼼짝 말고 공부하고 있으라고 하시면서 어디론가 가셨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아버지와의 갈등...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할 형편은 못되었던 것 같고 아버지가 직접 공부를 봐주셨다. 아버지와 하는 공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한 없는 기대의 시선을 보내다 나를 끔찍이 한심해하고 답답해하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곧 무서웠고 이내 싫어졌다. 아버지의 눈빛, 표정, 말투, 훈계, 모든 게 싫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신경쇠약에 걸렸고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독서실에 숨어서는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뽑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전교 1등 할 줄 알았던 아들의 성적에 한없이 허망해하시면서도 허옇게 텅 비어버린 아들의 두피에 약을 발라주시면서 아버지도 어찌해야 할지 당혹해하셨을 것이다. 더 다그쳐야 할지 아니면 놔두어야 할지 곤혹스럽지 않으셨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공부를 봐주시는 건 흐지부지되었다. 아버지도 일하시느라 바쁘시기도 하셨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힘들어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한 번씩 나를 붙들고 훈계를 늘어놓곤 하셨다. 성실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집중하면 된다, 의지가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알아야 한다는 ‘분수’가 무엇인지 지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실과 의지는 중학교 시절 나의 화두였다. 공부를 못해 받은 설움 때문에 공부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실하려고 했고 의지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낸 후 남는 건 나는 왜 이렇게 불성실한가, 나는 왜 이 모양으로 의지력이 부족한가, 나는 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뿐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들
나 또한 아빠가 되었고 아들이 생겼다. 사춘기가 되더니 반항을 한다. 훈계를 하고 다그쳤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반항은 종종 정도를 넘고 키가 나보다 커지고 나서는 부모의 존재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어두운 낯빛으로 들어와 손 씻으라는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린 채 게임을 하다 지겨우면 핸드폰을 하고 핸드폰을 하다 지겨우면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다 지겨우면 다시 핸드폰을 한다. 아무 목적도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우발적으로 게임, 핸드폰, 영화를 반복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않는가. 부산 가는 기차를 타고 서울 가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매일매일 아무 생각 없이 게임하다 핸드폰 하다 영화 보다 다시 게임을 하면서 자신 앞에 좋은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참고 또 참다가 간혹 훈계하지만 변화는 없다.
대신 내가 아버지의 존재가 숨막혔던 것처럼, 내 아들도 나의 눈빛, 표정, 한숨, 잔소리가 괴롭다 한다. 그리고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느냐고 목소를 높인다. 아니, 믿을 만 해야 믿는 거 아닌가? 나는 아들에게 아빠는 이제 성실과 의지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님을 알고(그 이유는 따로 글을 써야 할 문제다) 사회적 성공과 학교 공부 잘하는 일 따위가 결코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밑밥을 깐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지만 사람 노릇하고 살려면 최소한의 의지와 성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속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좋은 루틴은 필요하다고, 삶을 방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인간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너무 분명하다고, 너는 지금 모르지만 살아보면 분명 알게 된다고, 최소한 사람 구실 하며 밥 빌어먹지 않고 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어머니
아버지보다 키가 더 자라기 전 아버지와 공부를 하다가 아버지가 나를 답답해 하며 혼을 낼 때면 어느 순간 억울하고 서럽고 혼란스운 마음으로 눈물 흘리면서 나도 잘하려고 하는데 안 된다 나는 머리가 나쁘다고 항변하곤 했다. 내 방 옆에 부엌이 있었고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하시면서 그 말을 다 들으셨을 것이다. 어머닌 당신 몸에 품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못난 이유가 혹여 당신 탓은 아닌지 자책하셨을까. 아버지 쪽 형제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셨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끔 나를 붙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려서 너무 말을 잘해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너는 똑똑하다, 너는 진실한 사람이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말도 반복적으로 들어 아버지의 훈계처럼 기억에 또렷하다. 20대 중반에 이른 친구들은 벌써 취업을 할 때도, 대학 4년을 다니고도 졸업을 못한 채 스물다섯에야 군대를 갈 때도, 20대 후반에 군대를 제대하고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 때에도 어머니는 늘 똑같이 말씀하시곤 했다. 너는 어려서 너무 말을 잘해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너는 똑똑하다, 너는 진실한 사람이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도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겉으로 보이는 내 생활과 상황 그리고 현실을 고려할 때 냉정하게 따져 보지 않더라도 그런 기대가 비현실적임은 분명하다. 현실적인 건 아버지의 불안과 안타까움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운명의 짓궂은 장난으로 공부가 숙명이 되었고 공부로 약간의 성과를 내기도 하자 어머니는 보란 듯이(내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거봐라 네가 늦머리가 틘 것이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재건할 것이라는 제자들의 기대가 오해임을 자주 지적했고 구약의 신념 체계에서 계속 멀어져 갔으며 현실이라는 견고한 실재가 보이지 않는 듯 살았다. 무엇에 홀렸는지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으나 수시로 엄습하는 불안을 잠재울 순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예수가 도저히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나 결국 예수는 죽고 말았다. 때리니 맞고 찌르니 찔리고 못 박으니 못 박혔다. 그냥 그렇게 무력하게 사라졌다. 제자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성서는 그들의 믿음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고 기술한다. 예수의 부활 사건 때문이었다. 어쩌면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이 부활한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가 되었다. 믿음이 현실적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기대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만들었다. 실상이나 증거가 아니라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수의 스티그마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었던 도마에게 예수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한다.(요 20:29) 오직 믿음만이 세속의 질서를 허물고 현실의 견고한 장벽을 허문다. 혹자의 말처럼 현실 세계와 이에 기초한 평가로부터 믿음의 대상을 지켜낸다.
다시 아들... 그리고 나라는 아빠
의지를 갖고 집중하면 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훈계에서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의 공식처럼 나는 그것을 다시 아들에게 반복하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을 숨 막히게 했다. 나의 이러한 말들로 아들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어린 시절처럼 그러한 평가 속에 포획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나의 어머니나 예수의 제자들처럼 현실적 불가능성 너머에 있는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객관적인 현실 인식과 경험이라는 미명 하에 여전히 기존의 논리와 질서를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분명 이 체계 내에서 성실과 노력은 중요하고 루틴을 만들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믿음은 그 너머에서 작동한다.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해 왔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내 불안과 강박은 세속의 질서와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입각한 판단은 이 현실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현실 너머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도마처럼 스티그마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관념을 특정한 사례에 적용한 후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속적 성공과 무관하게 다른 가치와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성실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 기저에는 여전히 세속의 성공 공식에 대한 숭배가 놓여 있다. 그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고 다른 주체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한, 현실과 객관이라는 신화 속에서 신음하는 내 아들과 다른 타자를 지켜줄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나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나를 무던히 인내했고 좋은 가르침과 모범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내 일부에는 그 결과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들과의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믿음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나를 불안해했던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땐 당연하다. 어머니처럼 아들을 믿지 못하고 나 또한 아버지처럼 현실의 장벽 속에서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제 아들에게서 믿음을 통해서만 보이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려 한다. 아니, 어떤 계기를 통해 나는 그러한 믿음의 길로 미끄러져 들어온 듯하다. 현실적으로 볼 때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일지라도 그 믿음이 아들을 이 체계의 논리와 강제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아들이 스스로 타자의 권력으로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때까지, 나의 믿음이 먼 곳에서나마 희미하게 빛나 그것을 따라 작은 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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