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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철학서들 번역 고쿠분 고이치로의 (동아시아, 2019)를 읽다 몇 자 쓴다. 책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 학계, 출판계의 관행 문제다. 요즘 철학 관련 번역서 시장에 일본 저자들의 저작 번역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위에 언급한 고이치로, 우치다 타츠루, 에가와 다카오, 아즈마 히로키, 지바 마사야, 우노 구니이치, 미우라 도시히코 등 대륙철학은 물론 분석철학 관련 저작도 있다. 주로 유행하는 철학에 대한 해설서류의 2차 문헌들이다. 서양의 철학서 번역과는 또 다른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차 문헌의 표준 번역본도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설서류의 2차 문헌이 난무하는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들 번역서에서도 우리 철학계의 고질적 문제가 여전히 반복, 심화되는 느낌이다. 우리 철학계의 타자화..
다만 인식하라! "우리가 저열한 육욕에 지배된 사람의 본성을 고찰하고 그가 현재 지닌 그런 욕구와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있는 욕구를, 또는 다른 때에 그가 지닌 욕구를 비교할 경우, 우리는 이 사람이 더 좋은 욕구가 결핍되어 있다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게 덕에 대한 욕구가 속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의 결정 및 지성과 관련시켜 볼 경우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그런 더 좋은 욕구는 지금 이 순간 악마나 돌멩이의 본성에 속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본성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더 좋은 욕구의 결핍이 아니라 단지 부정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편지21」) 자연 안에는 어떠한 결함 때문에 우리가 슬퍼하고 비웃고 경멸하고..
운명애의 역설적 자유 “하지만 인간의 역량(potentia)은 극히 제한적이며 외부 원인의 역량에 의해 무한하게 압도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실재들을 우리의 사용에 맞춰 조정하는 절대적 능력(potestas)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다했으며, 우리가 가진 역량은 우리가 이 일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그 질서를 따르는 자연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의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용성의 원칙이 요청하는 것과 상반되게 일어나는 것을 평정하게 견뎌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를 명석판명하게 인식한다면, 지적 능력에 의해 정의되는 우리의 부분, 곧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은 이에 대해 기꺼이 만족할 것이며, 이러한 자족감 속에서 존속하려고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