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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무로부터 나온 것은 없고 무가 되는 것도 없다

전체이며 또한 전체가 아닌 것, 한곳에 모이며 또한 따로 떨어지는 것, 함께 부르며 또한 제각기 부르는 것,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하나, 그리고 하나로부터의 모든 것.  — 헤라클레이토스 

 

 

고대 유물론자의 말처럼 무로부터 나온 것은 없고 무가 되는 것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이 되고 그렇게 내가 존재하고 나도 다른 것으로 바뀐다 존재의 생성 소멸은 있음과 없음의 점멸이 아니라 존재 변화의 매듭일 뿐이다 내가 된 타자와 현재의 나와 타자가 될 나는 모두 나이며 내가 아닌 것이다 백여 년 동안 엔트로피의 필연적 증가에 저항하며 정체성을 유지할지라도 인간은 결국 관계의 일시적 산물이고 다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생성에 참여할 존재의 일부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존재하는 나와 나의 정체성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한 나는 중요하다 그러나 물어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는 내가 어떤 타자인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과정 자체가 다른 무엇이 내가 되고 있음을 뜻하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나 또한 다른 무엇이 되고 있다 실재적인 나는 추상적인 것만 같은 관계적 개체로서의 나이고 가상적인 나는 실재적인 것만 같은 독립적 개체로서의 나이다 

 

모든 것들은 어떤 인연으로 나와 만나 내 일부가 되고 나를 변화시키고 사라지는 수 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의식적 섭취와 수용 이상으로 의식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나라고 불리는 존재에 들고 나며 나와 외부를 연결한다 타자와 나의 경계는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만 표상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가를 묻기 위해 나를 나로 만드는 타자들과 타자를 타자로 만드는 나인 것들을 물어야 한다 내가 어떤 인과적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는지 그 힘들의 역사와 관계를 펼쳐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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